[기고] 갑질하는 투자가, 동행해주는 투자가
[기고] 갑질하는 투자가, 동행해주는 투자가
  • 백세현
  • 승인 2018.11.26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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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현 해외컨설팅 ‘피그말리온’ 대표이사
백세현 해외컨설팅 ‘피그말리온’ 대표이사

어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난생 처음으로 창업한 것도 아니고 이번이 두번째 사업이지만 역시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이전에 다른 사업을 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제2의 창업에 도전했는데 3년 정도 지나자 자금이 너무 절실했다.

투자사에 함부로 들이밀 수도 없다. 자칫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달려들었다가 투자사들 사이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투자미팅을 다녀보면서 자괴감이 든다. 단순히 투자를 거절당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느낄 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가진 자는 돈이 필요한 자에게 무조건 우월감을 갖게 마련인가 보다. 그래도 감내해야 한다. 자금이 필요하니까. 이해를 해도 여전히 비참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동안 매출도 올려야 하고 순이익에도 신경을 써야겠고 직원 관리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대형 벤처캐피탈(VC)에서 연락이 왔다. 투자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감사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일단 투자를 받고 나니 마치 회사를 빼앗긴 느낌이다. 투자해준 것은 너무 고맙지만, 투자조건계약서(Term Sheet)에 서명할 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나 싶었다.

매월 한번씩 찾아와서 매출과 순이익, 경영 상황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고 찾아오는 것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찾아와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건설적인 조언은 없고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들게 하거나 혹은 그냥 호통치고 가는 정도이다.

자금이 아쉬워서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열심히 하는 해외사업에 대해서는 핀잔을 주며 괜히 겉멋만 들었다는 ‘꾸중’을 듣고 해외에서 투자받는 것은 꿈같은 얘기니까 꿈 깨란다.

물론 대형 VC이기때문에 투자 경험도 많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라는 애정어린 조언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인듯 하다.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해외사업쪽을 정말로 잘 아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더 구체적인 얘기는 해주지 않고, 드렇다고 관련 파트너들을 소개해주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데 그냥 누가 길에서 돌을 던져서 맞은 느낌 정도이다.

이런 사례가 드물면 좋은데 의외로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한다. 주주 입장에서는 투자를 했으니 당연히 회사의 방만한 경영이나 잘못된 사업 관행을 잡아나가는 것은 분명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아예 쥐락펴락하는 것과 모든 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서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논의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좋은데 탑다운식으로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고압적인 자세에 당해낼 재주가 없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 둘 떠날 수밖에 없는 창립멤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회사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것이니 받아들이고 전진해야 한다.

입성과 수성은 다를 수 밖에 없기는 하다. 입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있고 수성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있다. 모두가 크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고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면서 대형기업화돼가는 과정에서 초기 멤버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그런 기업문화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창립 초기의 열정과 순수함, 그리고 아직 대형화되기 전 어느 정도 남아있는 인간미랄까 이런 걸 원하는 이들도 있고 회사를 세워나가 성장시키는 것에서 묘미를 느끼고 일단 어느 정도 성장하면 지루해서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모든 초기 멤버들을 다 잡을 수는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투자를 받은 지 얼마 안되어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초기멤버들이 떠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는 하다.

투자하고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하라고 강요하는 투자사들 입장에서는 투자를 했으니 회사가 잘돼서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을 수 없겠다. 다만 그 스타트업 자체의 고유 DNA를 최대한 죽이지 않은 한도에서 천천히 진행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투자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는 찾기 어렵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 유니콘 기업에게 성공적으로 인수합병된 한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사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투자가의 경우 먼저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을 눈여겨보았다가 이들을 보고 투자를 한 후 사업이 잘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관련 회사나 인물들을 소개하고 심지어 고객사들까지도 소개를 해서 자신이 투자한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갑질보다는 최대한 자주 만나고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이면 아는 이들을 초빙해서 함께 해당 스타트업 경영진들과 논의하고 최선의 방향을 함께 잡아 나갔다. 필요시 다른 투자사도 찾아주는 등 자사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최대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함께 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결과 해당 스타트업은 고유의 기업문화와 창업이념을 해치지 않고 잘 성장하여 올해 현지 유니콘 기업중 한곳에 의해 인수합병을 이뤄내게 된 것이다.

해당 투자사 대표의 철학은 간단하다. 투자를 하는 순간 동반자가 되는 것이고 그 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한다는 것.

하지만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혹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보다는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가고 전략도 짜며 수치적으로만이 아니라 스타트업 자체의 내적 성장과 내실을 다지면서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여야한다는 것이다.

착한 투자가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빨리 성장시킨다고 스타트업 고유의 DNA를 송두리째 밟아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기보다는 함께 고민하며 성장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같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 즉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는 것이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된다.

현지에서 굴지의 대기업 한 군데는 스타트업투자를 해서 성공시킨 적이 없다는 걸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트업들에게 투자할 때부터 말도 안되는 요구들을 해오고 싫으면 말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설사 투자를 해도 대기업으로 성공해온 자신들이 무조건 잘 알기때문에 시키는대로 하라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하인처럼 만들어버려 부리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당 스타트업이 잘 될리가 없다. 특히나 사업분야가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대기업의 다년간의 경영노하우가 통할 가능성이라도 있을텐데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한 경우 그 스타트업은 계열사 정도로 전락하고 초기 창업정신이나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 따위는 온데간데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더 낮아진다.

투자를 받아서 방만하고 무책임하게 경영하는 스타트업 경영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경우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 제약을 해야하고 견제해야하고 고언을 아껴서는 안되며 투자가로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회사가 잘못 가지 않도록 해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투자가는 투자를 하면서 동반자로서의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다. 허무맹랑하고 순진무구한 동화 같은 얘기같지만 도리어 그러한 마인드를 통해 그 스타트업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투자를 받은 후 투자가가 지나치게 권력을 휘두를 경우 스타트업 경영진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것이다. 시키는대로만 따라가면 안된다. 돈을 가진 투자사가 대형이라고 하여 그들이 꼭 해당 사업을 더 잘 아는 것은 아니고 더 잘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사업 하지 말라고 대형VC에게 꾸중듣던 한 스타트업은 실제로 꿈같은 해외시장 진출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대형VC가 늘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만약 그 스타트업 경영진이 대형VC가 하는 말이 맞다고 무조건 다 따랐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성과였던 것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나 경영진은 확신을 갖고 투자사들을 대하고 이들을 무시하고 싸우라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예스를 하고 잘 보일 수밖에 없다고 개탄하지 말고 합리적인 경영판단을 통해 자신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면서 말이다. 그런 철학이 없다면 사실상 그 스타트업은 이미 실패한 것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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